신용회복경험담
간호사 유니폼 안에 숨겨진 빚의 무게
- 최고관리자 오래 전 2025.05.26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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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입부: 평범했던 워킹맘의 하루 (약 15%)
저는 올해 서른여섯, 대학병원에서 근무 중인 간호사이자 두 아이의 엄마입니다. 큰아이는 초등학교 2학년, 작은아이는 아직 유치원에 다니고 있어요. 병원에서는 긴박하게 일하고, 퇴근하면 집에서는 아이들 돌보랴 살림하랴,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도 모릅니다.
남편도 직장 생활을 하고 있지만 맞벌이의 무게는 늘 빠듯하죠. 그래도 하루하루 바쁘게,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지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희 부부는 새로운 도전을 결심했죠. 바로 프랜차이즈 창업이었습니다.
2. 전개: 꿈은 컸고, 현실은 냉혹했다 (약 25%)
병원 일은 안정적이지만 교대근무로 체력도 고갈되고, 장기적으로는 다른 수입원도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던 중 한 프랜차이즈 카페 사업 설명회를 듣고, ‘이 정도면 잘되겠다’ 싶어 시작하게 됐죠. 창업 자금의 일부는 대출로 마련했고, 나머지는 남편과 제가 모은 돈을 보탰습니다.
하지만 오픈 몇 달 만에 현실은 달랐습니다. 생각보다 유동인구가 적었고, 매출은 임대료도 못 낼 만큼 떨어졌습니다. 코로나 여파도 있었고, 브랜드 측의 지원도 기대와 달랐습니다.
매장을 정리하기까지 2년 반 동안 적자를 버텼고, 결국 폐업 수순을 밟게 됐죠. 카드대금은 밀리고, 은행 대출이자도 연체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생긴 총 채무는 1억 1천만 원.
밤낮으로 병원 근무를 이어가며 카드 돌려막기를 하던 시기, 제 몸도 마음도 점점 망가져갔습니다.
3. 위기: 아이들 밥상 앞에서 멈춰버린 눈물 (약 20%)
결정적인 순간은 아이들 밥을 차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냉장고 안에 반찬거리가 없어, 급하게 편의점 도시락으로 저녁을 해결하며 둘째가 물었어요. “엄마, 왜 요즘은 반찬 없어요?”
그 한마디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엄마로서, 아내로서, 직장인으로서 너무나 미안하고 부끄러웠어요. 더는 이 상황을 버틸 수 없다는 생각에, 남편과 긴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때 지인이 개인회생이라는 제도를 조심스럽게 알려줬고, 처음엔 망설였지만 결국 상담을 받기로 했습니다. 상담실 문 앞에 서서 한참을 망설이다 들어섰던 그 날을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이게 정말 마지막 기회다’라는 간절함뿐이었죠.
4. 해결: 벗어나기 위한 현실적인 선택 (약 25%)
개인회생 상담 후, 정확한 채무 내역과 수입을 정리해 신청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병원에서의 급여 명세서, 아이들 양육비 내역, 생활비 등 하나하나 기록하며 '내가 이렇게까지 왔구나' 실감했습니다.
상담부터 법원 인가까지 약 5개월이 걸렸고, 그 사이 불안과 안도의 감정이 교차했죠. 법원 출석 당시 판사님 앞에서 제 이야기를 하는데 눈물이 날까봐 조심조심 말을 이었습니다.
결국 인가를 받고, 현재는 월 38만 원씩 3년간 납부하는 변제계획을 따르고 있습니다. 전체 채무의 절반 이상이 탕감되고, 남은 금액은 무리 없이 갚아나갈 수 있게 된 거죠.
5. 결말: 다시 희망을 안고 살아가는 오늘 (약 15%)
지금은 개인회생 1년차를 지나고 있습니다. 빠듯하지만 생활은 안정됐고, 더는 전화 벨 소리에 심장이 내려앉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아이들 앞에서 마음 편히 웃을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변화예요.
남편과도 서로에 대한 신뢰가 더 깊어졌고, 주말마다 작은 행복을 찾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앞으로의 목표는 단순합니다. 변제 잘 마무리하고, 조금씩 저축해서 아이들 교육비에 보태는 것. 그리고 다시는 무리한 투자로 가정을 위험에 빠뜨리지 않겠다는 다짐입니다.
혹시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시는 분 중 저처럼 빚의 수렁에 빠져 허우적대고 계신다면,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개인회생은 포기가 아닙니다. 다시 시작하기 위한 방법입니다. 숨기지 말고, 도움을 청하세요. 그 용기가 삶을 바꿉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