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회복경험담
남들 시선보다 중요한 건, 내 가족과 나의 삶이었습니다
- 최고관리자 오래 전 2025.07.23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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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입부: 일과 육아에 치열했던 평범한 일상
저는 36살, 두 아이를 키우며 대학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입니다. 남편도 직장생활을 하고 있지만, 맞벌이 부부로 아이들 등하원부터 집안일까지 정말 숨 돌릴 틈 없이 바쁘게 살아왔어요.
출근 전 새벽에 김밥 싸고, 퇴근하면 아이 숙제 봐주고, 아이 재우고 나서야 저녁을 먹는 게 일상이었습니다. 남들이 보기엔 그럭저럭 잘 살아가는 가정이었겠지만, 속사정은 달랐습니다.
무리한 선택이었지만, 처음엔 단지 ‘가족을 위해 조금 더 나은 삶을 만들어보자’는 마음이었습니다.
2. 전개: 고급차 리스의 유혹, 그리고 악순환의 시작
2년 전쯤, 남편과 상의 끝에 조금 무리해서 고급 외제차를 리스로 뽑았습니다. 사실 저도 마음 한켠으로는 '애들 키우면서 이렇게 고생하는데 이 정도는 괜찮지 않나' 싶었고요.
처음 1년은 문제 없었습니다. 월 리스비 80만 원, 유지비 포함해서 월 120만 원가량 들었지만 야근수당이나 명절 보너스로 버텼어요. 그런데 코로나 이후 병원 근무가 늘어나며 체력도 바닥났고, 아이들 돌봄비용도 더 들어가면서 카드 돌려막기가 시작됐습니다.
그렇게 2년간 늘어난 카드 대금과 리스 연체로 인해 쌓인 채무는 총 5,500만 원. 리스회사와 카드사에서 날아온 독촉 문자, 연체이자 고지서를 하루에도 수십 번 확인하며 숨이 막혔습니다.
3. 위기: 무너지는 일상 속에서 결심한 회생
결정적인 계기는 어느 날 아이가 유치원에서 돌아와 말한 한 마디였습니다. “엄마는 왜 자꾸 화만 내?” 순간 가슴이 철렁했어요. 저는 돈 걱정과 피로 속에 아이에게 웃어주지도 못하고 있었더라고요.
그날 밤, 처음으로 제가 지금까지 뭘 놓치고 있었는지 돌아봤습니다. 남편에게 처음으로 모든 채무 상황을 털어놓았고, 의외로 남편은 화내기보다 “혼자 안 버텼으면 좋았을 텐데”라며 제 손을 잡아줬습니다.
그렇게 용기 내어 개인회생 상담을 받게 되었고, 처음엔 솔직히 '이런 절차까지 가야 하나' 자괴감도 들었지만, 상담을 받으며 알게 됐어요. 내가 포기하고 있던 건 빚이 아니라 나 자신이었다는 것을.
4. 해결: 개인회생 절차로 다시 세운 삶의 균형
상담을 받고 서류를 준비해 법원에 신청서를 제출하기까지 약 두 달이 걸렸습니다. 대학병원이라 소득증빙은 비교적 명확했고, 남편과 아이들을 부양하고 있다는 점이 고려되어 월 21만 원씩 3년간 납부하는 변제계획이 인가됐습니다.
법원 출석은 떨렸지만, 판사님이 “당신은 지금 회피하는 게 아니라 책임지려는 겁니다”라고 말해주셔서 울컥했어요.
초반엔 가족들 외엔 말하지 못했지만, 막상 주변 워킹맘들 사이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있다는 걸 알고 나서는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라는 위로가 컸어요.
5. 결말: 다시 웃고, 다시 달리는 중입니다
지금은 변제 8개월 차. 아직도 빠듯한 생활이지만, 신용불량의 공포에 떨지 않고 살아간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새삼 느끼고 있어요. 차는 반납했고,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하지만 오히려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늘었습니다.
아이들도 요즘은 웃는 엄마를 더 자주 보고요. 가끔은 피곤한 몸을 이끌고 일하러 나가며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지만, 지금 이 선택이 결국 나와 내 가족을 살리는 길이라는 걸 믿습니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 채무로 인해 자책하고 계시다면 꼭 말하고 싶어요.
지금의 결정이 인생의 끝이 아니라, 다시 시작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저는 그걸 몸소 겪고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