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회복경험담
노후의 평온을 되찾기 위해, 다시 처음부터 시작했습니다
- 최고관리자 오래 전 2025.05.19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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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입부: 채무 발생 전의 일상적인 삶 (15%)
저는 올해 62세입니다. 3년 전까지만 해도 중견기업에서 생산직으로 정년까지 일했고, 지금은 아파트 경비원으로 근무 중입니다. 아내와 함께 조용한 삶을 살고 있고, 세 자녀는 모두 결혼해 독립했습니다. ‘이제 좀 쉬자’ 싶었던 시기였고, 노후를 단출하지만 안정적으로 준비했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문득, 나 스스로를 위한 작은 사치를 부리고 싶단 마음이 들었습니다. 젊은 시절 타보고 싶었던 외제차 리스를 결심했죠. 퇴직금도 일부 있었고, 연금도 나오는 상황이니 괜찮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 판단이 제 인생의 전환점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2. 전개: 채무 발생과 악화 과정 (25%)
리스 계약 당시에는 월 리스료가 78만 원 정도였고, 유지비도 감당 가능한 수준이라 여겼습니다. 하지만 예상보다 차량 보험료, 정비비, 유류비가 훨씬 많이 들었습니다. 신용카드로 일부 비용을 돌리기 시작했고, 연체가 한두 번 발생하면서 이자와 연체료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시작했죠.
결국 차량 반납 시점이 되어도 남은 정산금과 위약금이 수백만 원대로 나왔고, 카드사에서 현금서비스와 카드론을 반복해서 쓰게 됐습니다. 그렇게 2년 만에 채무는 총 5,500만 원까지 불어나 있었습니다. 리스회사 1곳, 카드사 2곳에서 각각 채권이 잡혀 있었고, 연체 독촉 전화는 하루에도 여러 번 왔습니다.
“정년까지 잘 마무리했는데, 왜 이렇게 됐을까.” 스스로를 탓하며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아이들에겐 말도 못 했고, 아내도 걱정할까봐 제대로 알리지 못한 채 가슴에 묻고 살았습니다.
3. 위기: 개인회생 결심까지의 상황 (20%)
결정적인 계기는 병원 진료비였습니다. 아내가 고혈압과 당뇨로 약을 꾸준히 먹어야 했는데, 어느 날 통장 잔고가 마이너스가 되어 처방을 미룰 수밖에 없었어요. 그날 밤, 아내 몰래 화장실에서 펑펑 울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개인회생'이라는 단어를 검색해 봤습니다. “나이 많은 사람이 해도 되나?”, “은퇴한 사람도 가능할까?” 고민은 많았지만,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제 나이에도 신청하고 있다는 사실에 용기를 얻었습니다. 상담을 받고 나오며, 처음으로 ‘살 길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4. 해결: 개인회생 진행 과정 (25%)
서류 준비부터 법원 인가까지는 약 3개월 반 걸렸습니다. 정기적인 소득(경비원 급여 약 180만 원)과 지출 내역이 명확했고, 배우자 부양 사실도 인정받아 월 18만 원씩 36개월 납부하는 조건으로 변제계획이 인가되었습니다.
이자 포함 전 채무 전액이 아니라, 총 648만 원만 갚고 나머지는 면책받는다는 점에서 마음이 놓였습니다. 법원 출석도 무사히 마쳤고, 판사님이 “용기 내줘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해주셔서 큰 위로가 됐습니다.
물론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법률 용어나 과정이 생소했고, 경제적으로도 타이트했지만, 정해진 날짜에 납부하는 걸 최우선으로 삼았습니다. “나중에 아이들한테 떳떳하려면 이 길을 끝까지 가야 한다”고 스스로 다독이며 버텼습니다.
5. 결말: 현재의 변화와 희망 (15%)
현재는 개인회생 인가 후 1년째 변제 중입니다. 한 달 18만 원이라는 금액이 크진 않지만, 매번 납부하면서 마음은 한결 가볍습니다. 채권자들의 독촉 전화도 사라졌고, 무엇보다 ‘법적인 보호를 받고 있다’는 안정감이 생겼습니다.
요즘은 예전보다 더 검소하게 살고, 중고폰을 쓰고, 아내와 함께 도시락도 싸 다니며 지냅니다. 남은 세월, 크게 바라지 않습니다. 그저 조용히, 그리고 책임감 있게 살아가고 싶습니다.
혹시 제 글을 읽고 계신 분 중에, ‘이 나이에 뭘 새로 시작하겠나’ 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개인회생은 재기의 문을 여는 과정입니다.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삶을 바로잡기 위한 정당한 권리입니다.”
우리 인생에서 늦은 때란 없습니다. 저도 지금, 다시 시작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