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회복경험담

2025.06.24 11:30

다시 설 수 있다는 믿음, 그 첫 걸음이 개인회생이었습니다

  • 최고관리자 오래 전 2025.06.24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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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입부: 평온했던 일상, 그리고 갑작스런 변화

제 인생은 한때 ‘안정’ 그 자체였습니다. 외국계 IT 기업에서 마케팅 매니저로 일하며, 매일 영어로 회의하고 출장 다니는 바쁜 일상이었죠. 수입도 꽤 괜찮았고, 유치원생인 아이와 아내와 함께한 주말 외식이나 가족 여행이 무엇보다 소중했습니다. 누구보다 평범하면서도 안정된 삶을 살고 있다고 믿었죠.



 

2. 전개: 이혼 후, 예상 못한 금전적 파도

하지만 결혼 생활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고, 결국 협의 이혼을 하게 됐습니다. 가장 힘들었던 건 감정적인 아픔도 있었지만, 이혼 후 정산 과정이었습니다. 위자료와 재산 분할, 양육비 문제까지 복잡하게 얽히며 한순간에 7,800만 원이라는 큰 채무가 생겼습니다.

대부분 은행 두 곳에서 대출을 받았고, 부족한 부분은 카드론으로 메웠죠. 처음 1~2년은 고정급여로 어느 정도 버텼지만, 금리가 오르고 생활비와 양육비까지 빠져나가니 상황은 점점 악화되었습니다. 급기야 카드값을 연체하게 되었고, 신용등급도 떨어지기 시작했죠.

매달 말이 되면 초조해졌습니다. 통장에 남은 금액을 보며 한숨 쉬는 날이 늘어갔고, 일은 손에 잡히지 않고, 아이 얼굴을 볼 때마다 미안한 마음뿐이었습니다.



 

3. 위기: 더 이상은 못 버티겠다

결정적으로 무너진 순간은, 회사에서 연봉 인상이 보류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였습니다. 고정수입에 기대고 있던 제 상황에서는 큰 타격이었죠. 마침 그 즈음 카드사에서 한 번 더 연체가 발생했고, 채권 추심 전화가 회사로 오기 시작했습니다. 그 순간 ‘이제 진짜 끝이구나’ 싶었습니다.

수개월 동안 개인회생을 고민만 했습니다. 체면도 있었고, 직장에서도 혹시 불이익이 있을까 걱정되었죠. 하지만 지인 중 한 명이 조용히 제게 이야기해줬습니다.
“그건 도망이 아니라 다시 시작하는 방법이야.”
그 말에 용기를 얻어 상담을 신청하게 되었고, 처음 이야기를 꺼낼 때 목이 메어 제대로 말도 못 했지만, 상담사의 차분한 설명과 경청 덕분에 마음이 조금 놓였습니다.



 

4. 해결: 계획된 변화, 조금씩 찾아온 숨통

상담부터 법원 인가까지 약 4개월이 걸렸습니다. 그동안 필요한 서류를 준비하고, 월 지출 내역을 정리하며 제 상황을 스스로도 되짚어보게 되었습니다.

법원에서 인가된 변제계획은 월 26만 원씩 3년 동안 납부하는 조건이었습니다. 처음엔 “과연 내가 이걸 지킬 수 있을까?” 싶었지만, 실제로 해보니 예전처럼 고금리 이자에 허덕이던 시절보다 훨씬 마음이 편했습니다.

법원에 출석했을 때도 무척 긴장했지만, 판사님은 제 진술을 진지하게 들어주시고, 제 상황을 감안해 실현 가능한 조건을 내주셨습니다. 그때 느꼈어요. ‘이건 벌이 아니라 기회구나.’

가장 힘들었던 건 ‘내가 실패했다’는 자책감이었습니다. 하지만 조금씩 규칙적으로 변제를 해나가면서, 스스로를 다시 믿게 되었습니다.




 

5. 결말: 다시 돌아온 일상, 그리고 작은 희망들

지금은 개인회생 2년 차입니다. 아직 갈 길은 남았지만, 지금은 제 삶에 균형이 생겼고, 더 이상 무너질 일은 없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아이와 주말마다 공원에 가고, 작지만 따뜻한 집에서 평범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회사에서도 제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고, 재정 계획도 보다 현실적으로 세우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욕심내며 살 겁니다. 변제 기간이 끝난 뒤에는 작지만 단단한 재무 기반을 다시 쌓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그리고 같은 상황에 계신 분들께 꼭 드리고 싶은 말이 있어요.
“개인회생은 절망의 끝이 아니라 회복의 시작입니다. 부끄러워 마세요. 필요한 건 용기, 그 한 가지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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