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속도를 줄이게 된 순간

30살, 청년 창업가라는 타이틀을 달고 누구보다 빠르게 달리고 있었습니다. IT 기반 플랫폼 서비스를 운영하며, 투자자 미팅에 정신없이 쫓기던 날들. 매출은 아직 미미했지만, 가능성 하나만으로도 가슴 뛰던 시기였죠. 낮엔 사업, 밤엔 네트워킹과 자기계발. 겉으로는 모든 게 괜찮아 보였을 겁니다. 하지만 그 시기, 저도 모르게 한 발, 두 발 잘못된 방향으로 들어서고 있었습니다.

‘잠깐의 해소’가 만든 끝없는 구덩이

처음엔 단순한 호기심이었습니다. 친구 따라 소액으로 시작한 온라인 스포츠 도박. 몇 번 운 좋게 이기고 나니 이상한 자신감이 생기더군요. "사업이 잘 안 돼도 이걸로 메꿀 수 있겠다"는 착각. 그렇게 10만 원이 100만 원이 되고, 신용카드 현금서비스로 도박을 이어가게 됐습니다. 해외 카지노까지 다녀온 건 그로부터 반년 뒤였습니다.

2년 8개월 동안 쌓인 빚이 6,500만 원. 대부업체 3곳과 저축은행 1곳에 이자만 해도 월 80만 원 넘게 나가고 있었습니다. 사업 자금도, 생활비도 모두 빨려들고 있었죠. 직원들 월급은 겨우 맞췄지만, 제 카드값은 연체되기 시작했습니다. 매일 새벽까지 "이번에만 이기면 갚을 수 있다"며 모니터 앞에서 손을 떨고 있던 제 모습, 지금도 생생합니다.

바닥에 도달하고 나서야 보이는 출구

결정적인 계기는 어머니의 눈물이었습니다. 몰래 연체 통지서가 집으로 간 날, 어머니는 조용히 제 손을 잡고 말했죠. “우리 아들, 무섭지 않아?” 그 말에 무너졌습니다. 그날 처음으로 제 처지를 직면했고, 처음으로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무기력해졌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제는 정말 뭔가 바꿔야 한다는 결심도 했습니다.

한 달 정도 고민했습니다. 친구에게 어렵게 털어놨고, 그 친구가 조심스럽게 “개인회생이라는 방법도 있다”고 알려줬습니다. 처음엔 망설였습니다. 창업가로서 실패를 인정하는 것 같았거든요. 하지만 더 이상 도망칠 수 없었습니다. 결국 법률 상담을 예약했고, 상담실 문을 열던 그 날, 제 인생의 새로운 챕터가 시작됐습니다.

무너졌던 나를 다시 세우는 시간

상담부터 법원 인가 결정까지 약 4개월이 걸렸습니다. 채권자 목록, 채무 내용, 소득 증빙 등 모든 자료를 준비하면서 제 실수를 똑바로 마주해야 했습니다. 그 과정이 참 고통스러웠지만, 동시에 회복의 시작이었죠. 법원에 직접 출석해 제 상황을 설명하는 날, 긴장과 수치심으로 한마디도 제대로 못했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판사님의 차분한 질문과 안내 덕분에 절차는 무사히 마무리되었습니다.

인가가 떨어지고 나서 확정된 변제계획은 월 43만 원씩 3년간 상환, 나머지 부채는 면책 대상이었습니다. 지금은 변제 1년 차에 접어들었고, 빠짐없이 납부 중입니다. 사업은 잠시 접고, 프리랜서 개발자 일로 소득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아직 부족하지만, 이번엔 ‘정직한 속도’로 살아가려 합니다.

다시, 삶의 중심으로

도박이 제 인생에서 가져간 건 단순한 돈이 아니었습니다. 자존감, 신뢰, 꿈까지 무너졌습니다. 하지만 개인회생은 단지 빚을 없애는 제도가 아니라, 나를 다시 살아가게 해주는 재도약의 기회였습니다.

지금은 아침 일찍 일어나 운동을 하고, 작은 개발 프로젝트를 맡으며 꾸준히 저축을 하고 있습니다. 도박 중독 상담도 병행하고 있고요. 언젠가는 다시 스타트업에 도전할 날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번엔 내 삶을 망치지 않는 방식으로요.

같은 처지에 있는 분들에게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도망치지 말고, 용기 내세요. 부끄럽지 않습니다. 누구든 실수할 수 있고, 누구든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제가 그 증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