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회복경험담

2025.05.27 17:07

자식 공부시키겠다고 빚더미에 올랐습니다

  • 최고관리자 오래 전 2025.05.27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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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입부: 평범하지만 바쁜 일상 (약 300자)

저는 올해 42살, 지역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점장입니다. 결혼은 하지 않았고, 노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매일 아침 새벽 배송 물품을 정리하고, 하루 종일 계산대와 진열대를 오가며 바쁘게 지냅니다.

사람들은 제가 늘 밝고 성실하다고 말하지만, 속으로는 항상 ‘내일 카드값은 어떻게 내지’라는 걱정이 먼저였습니다. 그래도 부모님 건강 챙기고, 자식 잘 키우면 된다고 믿으며 버텨왔죠.



 

2. 전개: 유학, 꿈을 쫓은 선택의 결과 (약 500자)

제 외동딸은 어릴 때부터 영어에 흥미가 많았고, 성적도 우수했습니다. 고등학교 때 영어 말하기 대회에서 상도 여러 번 타고, 결국 “엄마, 나 유학 가고 싶어”라는 말을 꺼냈습니다.

솔직히 말해 망설였습니다. 우리 집 형편이 빠듯한 걸 딸도 잘 알고 있었거든요. 하지만 ‘아이의 꿈을 꺾을 수는 없다’는 마음으로 은행 대출과 신용카드 현금서비스를 동원해 총 8천만 원을 마련했습니다. 저축은 다 털고, 카드로 비행기 티켓과 학비, 생활비까지 감당했습니다.

처음 1~2년은 괜찮았습니다. 딸도 열심히 공부하고, 저도 편의점 야간 근무까지 늘려가며 버텼습니다. 그런데 코로나19가 터지고 매출이 급감하면서 사정이 악화되기 시작했어요. 연체가 시작되자 신용등급은 곤두박질치고, 결국 카드사에서 전화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3. 위기: 혼자 감당하기엔 너무 벅찼던 시간 (약 400자)

딸에게는 끝까지 숨겼습니다. “엄마 괜찮아, 공부나 열심히 해”라는 말만 반복했죠. 하지만 매달 쌓이는 이자와 연체료는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었고, 급기야 부모님 약값조차 미루게 됐습니다.

결정적인 계기는 통장 압류였습니다. 일용직 알바비까지 들어오지 않게 되자,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상담을 받기로 마음먹기까지 4개월은 넘게 고민했습니다. ‘내가 이 정도밖에 안 되나’라는 자책과 부끄러움이 마음을 짓눌렀죠.

주변 지인은 “요즘은 개인회생 제도가 잘 되어 있으니 너무 무서워 말라”며 제 손을 잡아줬고, 그 말이 큰 힘이 됐습니다.




 

4. 해결: 법의 보호 아래 다시 걷기 시작한 길 (약 500자)

처음 상담받을 때는 말 그대로 눈물부터 났습니다. 하지만 상담사 분은 제 상황을 꼼꼼히 듣고, “정직하게 살면서 어려움에 처한 분들을 돕는 제도”라며 위로해주었습니다.

개인회생 절차는 약 5개월 걸렸고, 그 사이 소득, 지출, 재산 내역을 철저히 준비했습니다. 제 수입은 월 180만 원 수준이었고, 변제 계획은 월 23만 원씩 36개월(총 828만 원) 상환하는 것으로 인가받았습니다.

법원에 출석했을 때는 정말 긴장됐지만, 판사님은 “채무자도 권리를 가진 시민이며, 회복의 기회를 줄 수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그 말에 저는 눈물을 참느라 고개를 들 수 없었습니다.



 

5. 결말: 작지만 확실한 희망 (약 300자)

현재는 변제를 시작한 지 9개월째입니다. 생활은 여전히 빠듯하지만, 압류 걱정 없이 일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숨이 트입니다. 무엇보다 딸이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이 최근에 들려왔습니다.

저는 다시는 무리한 선택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합니다. 제 자신을 너무 미워하지 마세요. 같은 처지에 계신 분들께 전하고 싶은 말은 이것입니다. 혼자 끙끙 앓지 마세요. 법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길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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