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회복경험담
체면을 내려놓으니, 인생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 최고관리자 오래 전 2025.06.18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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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입부: 채무 발생 전의 일상적인 삶 (약 15%)
저는 시청에서 근무 중인 46세 공무원입니다. 아내와 고등학생 자녀 둘과 함께 조용히 살아가던 평범한 가장이었습니다. 월급은 크진 않았지만 안정적이었고, 대출 없이 전세에 살며 나름대로 성실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했죠.
40대 초반, 주변 친구들 대부분이 외제차를 타기 시작하면서 저도 마음 한구석이 흔들렸습니다. ‘이 정도 나이엔 나도 좀 멋있게 살아도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무리해서 고급 외제차 리스 계약을 맺었습니다. 월 리스료만 87만 원. 유지비까지 합치면 월 130만 원이 훌쩍 넘었죠.
처음엔 괜찮았습니다. 보너스나 연말 정산으로 메꿨고, 약간의 카드빚 정도는 무리 아니라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그 무리가 빨리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2. 전개: 채무 발생과 악화 과정 (약 25%)
차량을 유지하려다 보니, 카드 사용액은 점점 늘어났습니다. 특히 고등학생 두 아이의 학원비와 생활비까지 겹치면서 상황은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처음엔 ‘잠깐만 참자’며 카드로 돌려막기를 했고, 리스료 연체가 시작되자 리스사에서 내용증명이 날아왔습니다.
당시 저의 총 채무는 리스사 잔여금 약 3천만 원, 카드사 2곳에서의 채무 약 2천5백만 원, 총 5천5백만 원 정도였습니다. 공무원이라 쉽게 대출도 받을 수 있었지만, 이자는 계속 쌓이고 원금은 줄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심리적인 압박이 컸습니다. ‘공무원이면서도 빚을 못 갚는 사람’이라는 낙인이 찍힐까 두려웠고, 가족에게는 쉽게 털어놓지도 못했습니다. 결국 아내에게 들켜 부부 싸움도 잦아졌고, 자존감은 바닥까지 내려갔습니다.
3. 위기: 개인회생 결심까지의 상황 (약 20%)
결정적인 계기는 급여가 압류될 뻔한 상황이었습니다. 카드사 한 곳이 본격적인 법적 절차를 예고했고, 그 사실을 알고는 아내가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더 숨기지 말고, 제대로 된 해결책을 찾자.”
그때부터 개인회생을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막연했습니다. ‘파산자처럼 낙인찍히는 건 아닐까’, ‘직장에 알려지면 어쩌나’ 수많은 걱정에 머릿속이 복잡했습니다. 하지만 상담을 받고 나니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이 제도를 통해 재기를 준비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고, 제게도 한 줄기 빛처럼 느껴졌습니다.
4. 해결: 개인회생 진행 과정 (약 25%)
상담부터 법원 인가까지는 약 4개월 정도 걸렸습니다. 공무원이라는 직업 특성상 소득이 명확했고, 일정한 지출 구조도 있어 서류 준비는 비교적 수월했습니다.
법원은 제 상황을 고려해, 월 31만 원씩 36개월간 변제하는 조건으로 인가 결정을 내렸습니다. 총 변제금은 약 1,116만 원이었고, 나머지 채무는 탕감받게 됐습니다. 5천만 원이 넘는 채무를 다 갚으려면 수년이 걸릴 일이었지만, 개인회생 제도를 통해 현실적인 해결책을 찾은 셈입니다.
법원에 출석했던 날, 수많은 고민과 부끄러움이 밀려왔지만, 판사님의 “성실하게 상환한다면, 새출발이 가능합니다”라는 말이 큰 위안이 됐습니다. 이후 변제계획에 맞춰 가계부를 작성하고, 아내와 함께 소비습관도 정리해 나갔습니다.
5. 결말: 현재의 변화와 희망 (약 15%)
지금은 개인회생 인가를 받은 지 1년이 지나고 있습니다. 매달 31만 원씩 성실하게 상환 중이며, 신용등급은 낮지만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고급차는 반납했고, 중고차로 바꿨지만 오히려 마음이 더 편안해졌습니다.
자녀들 학비와 생활비는 여전히 빠듯하지만, 빚에 대한 공포 없이 지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변화인지 새삼 실감합니다. 무리한 체면이 얼마나 위험했는지를 절실히 배웠습니다.
혹시 저처럼 사회적 체면 때문에 빚을 내고, 혼자 끙끙 앓고 계신 분이 있다면 꼭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개인회생은 숨는 것이 아니라, 다시 드러날 수 있게 해주는 제도입니다. 용기 내세요. 제2의 삶은 그렇게 시작됩니다.